현대 (광복 ~ 6.25 전쟁)
카이로에서 43년에 독립약속을 받음. 우리가 끊임없이 싸우면서 세계에 알렸기 때문
조선건국동맹(여운형) ->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치안유지, 좌우합작) -> 조선인민공화국(중앙) - 인민위원회(지방)
미국이 들어오면서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 인정 안됨.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차 부정함. -> 김구는 광복날 들어오지도 못함.
임시정부 주석을 내려놓고 개인으로 들어옴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3국(미국, 소련, 영국)
- 임시 정부 수립
- 신탁통치(+중국)
- 미소 공동위원회
좌익진영은 임시정부시립의 내용을 알고 찬성,
우익진영은 동아일보의 오보로 신탁통치만 봐서 반대
좌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 (박헌영)
우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 (이승만, 김구)
그리고 처단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맥아더 덕에 살게 되면서
우익에 스며들면서 반공 투사로 자리잡으면서 가려짐.
1차 미 소 공동위원회 (46)
참가자격을 두고 미국은 모두(우익 오는게 이득이였음)
소련은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 찬성한 좌익만
-> 휴회 -> 이승만이 정읍에 가서 빨리 남한 정부 수립하고 북쪽 소련을 격퇴시키자함.
-> 좌우합작운동(이승만 발언때매 진짜 분단 될수도 있겠다 싶어서 한 운동;
여운형(중도좌), 김규식(중도우)) <- 초기엔 미군정도 인정해주는 운동
-> 좌우합작 7원칙 (미소공동위원회 빨리 열자, 친일파 처단하자, 임시정부 수립하자 등)
but, 박헌영(좌), 이승만,김구(우)는 참여x, 여운형 암살당함 -> 좌우합작 힘을 잃게됨
2차 미 소 공동위원회 (47)
트루먼 독트린
: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
자유와 독립의 유지를 위한 경제 원조를 제공한다고 선언한 것.
참가자격 두고 또 대립하게됨. 1차랑 똑같음
-> 결국 결렬됨.
대한민국 정부수립
결국 결렬되고 UN에 문제가 넘어감.
인구비례로 하라하니 남측(인구가 북측보다 많음)이 유리해서
소련이 거부함 그래서 소총회에 가능지역만 총선거 해라 해서 5.10 총선거가 열림.
5.10 총선거
총선거는 국회의원을 뽑는거임.
나라의 운영을 위해 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를 먼저 뽑음.
- 최초의 보통선거
- 김구 읍고(남한 만의 총선거는 절대 반대,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 제주 4.3사건(좌익세력이 격렬히 반대해서 경찰 군인이 투입되면서 민간인까지 죽임,특별법을 주었지만 일부지역에선 총선을 안함)
- 남북협상
- 김구,김규식(남) + 김일성(북)
- => 남북제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회의
제헌헌법(48)
대통령 : 간선제(국회가 뽑음) -> 이승만
=> 대한민국 정부 수립
- 반민특별위원회(친일파 처벌) -> 실패로 돌아감(이승만이 협조를 안함,why? 일단 북쪽이랑 해결되면 하자)
- 국회 프락치 사건(반민특위를 프락치로 몰아가서 힘을 못쓰게함)
- 공소시효 축소
- 농지개혁 성공
대한민국 정부 수립되자마자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됨. -> 6.25 전쟁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6.25 전쟁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북한은 소련 중국의 지원을 받고
남한은 애치슨선언에 의하여 미국이 지원해줘야하는데 제외되어있었음
그래서 북한은 미국 지배를 받고 있는 남한을 해방시키려 쳐들어옴.
낙동강방어선(수도 -> 부산)(적화통일되나?)
-> 인천상륙작전
(장사리-학도병)(오 남한이 통일하나?)
-> 중국군 개입
-> 흥남 철수 (1.4후퇴,서울까지 뺏김)
-> 소련 휴전 제의
-> 휴전회담(자유송환(포로가 가고싶은 곳으로 가자) vs 자동송환(포로가 원래 있는곳으로 보내자))
-> 반공포로석방(이승만이 협의 없이 포로 풀어줌,
미국이 원하는게 뭐냐라고 묻자
미국의 경제적 지원,미국이 남는다라는 이승만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걸로 휴전이됨.)
-> 휴전 성사(1953, DMZ(비무장지대) 형성)
->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