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경제)
수취제도
조세
조선 초기에는 과전법으로 1결당 30두를 거두었는데,
세종때 공법으로(전분 6등법, 연분9등급)을 적용해서
1결당 4두에서 20두로 나눔.
그러다가 인조때 영정법으로 정함.
공법이 좋긴했는데 54개로 나뉘다 보니 복잡해서
걍 영정법(영원히 정함) 1결당 4~6두로 걍 최저세율로 정해버림.
공납
조선 초기에는 특산물을 제공함.
그래서 대신 공납(특산물내는거)해주는 대행업자인 방납이 생겼는데,
이 중간에 헤쳐먹는게 많아지면서 방납의 폐단이 발생.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동법이 시행됨.
대동법은 광해군때 시행되었는데,
이원익이 출발시키고 김육이 경기도에서 전국으로 확산 시키는데
큰 기여를 함.
대동법으로 특산물이 아닌 1결당 12두를 내는 형식으로 함.
또는 동전이나 포로 대신 냄.
이 쌀을 어디다 내느냐? 선혜청이라는 곳에 냄.
선혜청에서 공인(국가가 인정한 상인)이 쌀로 특산물, 물건을
사는 역할을 함.
결국 공인이 등장하면서 상품화폐경제 즉 물건을 팔기위해
팔기 시작함.(자급자족이 아니라)
역
역은 군역과 요역이 있는데,
전쟁이 워낙없다 보니 대립이랑 반군수포가 생김.
여기서도 많은 비리가 발생 그래서 후기가면서 영조떄 균역법이 생김
방군수포에서는 1년에 2필이였는데
균역법은 1년에 1필임(반값)
이러니 세금이 딸려서 어장세,염세,선박세도 거둠.
선무군관도 생김 나중에되면 농민도 부자 농민 있는데
신분 주는대신 세금 더 내는거임.
결작은 1결당 2두씩 내게해서 토지에다 세금을 또 메김.
=> 조선 후기를 보니 공통점이 세금 메기는 데
전세화 현상이 일어나는중.(땅에 1결당~)
농업
밭
2년 3작 하며 자급자족에서 후기 오면서
상품작물을 팔기 시작함 -> 담배, 인삼, 면화 등등
논
직파법을 많이 사용하고 이앙법도 있긴 했는데
남부 일부만 쓰다가 조선후기 오면 이앙법이 전국으로 확산됨.
그래서 이모작이 가능해지면서 생산력증가랑 노동력이 감소됨.
그래서 세금도 토지에 메겨도 백성들이 안힘들게 됨.
지대
초기에는 타조법으로 농사지으면 그에 2분에 1을 지주에게 줬는데
후기오면서 바뀐게 타조법 + 도조법이 생김.
타조법 -> 신분, 도조법 -> 계약.
슬슬 근대화 진행중임을 알수 있음.
농사
초기하면 세종때 나온 <농사직설>과 성종때 나온 <금양잡록>이 있고, 후기에 보면 <농가집성>과 상품작물을 위한 <색경>이 있음.색경>농가집성>금양잡록>농사직설>
상업
관해상인(국가 허락)
조선 전기에는 중농억상 정책으로 농사가 중요햇음.
대표적으로 시전상인이 육의전들을 종로에서 팜.
보부상도 있는데 이건 지방상인으로 봇짐 들고 파는거임. 이것도 국가 허락필요.
나중에 되면 혜상공국에 소속돼서 보호받음.
이들이 만든 협회가 황국협회가 있음.
(나중에 독립을 위해 앞장설때 나옴)
후기오면서 공인이 생김. 대동법을 통해서 등장했음.
시전상인들이 후기가 되면서 금난전권이라는 권리를 갖게됨.
한마디로 불법상인?같은 것들 때려 잡을 수 있는 권리를 줌.
하지만 정조때 폐지됨.(신해통곡)
보부상도 후기 오면 전국적 유통망을 가지게 됨.
사상
초기에는 그런거 없음. 후기오면서 개성의 송상(거상)
이들이 송방이라는 체인점도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활동함.
난전 상인은 영세상인들을 말함.
객주는 중계를 여각은 숙박을 맡은 상인들을 말함.
이러한 거상과 공인을 도고라 부름(독점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상인)
화폐
교환도 잘 안돼서 화폐가 저화라는 게 있긴 했는데 잘 안쓰임.
후기 오면서 상평통보가 쓰임.
근데 돈을 저장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돈을 찍어도 돈이 안남아돔.
그래서 디플레이션이 생김. 화폐가치 올라가고 물가가치가 떨어짐(전황)
수공업, 광업
후기로 점점 가면서 부역제의 해이 현상이 일어남.
그래서 물건을 팔기위해서 민영수공업자들이 등장함.
그러다 점점 독립수공업자로 자기들이 만들어 팔기 까지함.
민영광산도 설치하고 설점수세로 광산 세금을 얻는 것도 생김.
그래서 금지 시키는데 돈맛들린 사람들이 잠채(몰래 함)를 함.
덕대도 나오는데 따지고보면 ceo임 거상은 돈많으니깐 거상(사실상 자본가)에게 돈받고
그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거임.
=>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가 생기기 시작함.
조선 후기 (사회)
양난이 일어나면서 다 타버림.
그래서 국가재정 떨어지고 이를 해결 하기 위해
납속책을 함(곡물을 납부하면 임명장을 줌)
그 임명장이 공명첩이라는 건데 납속책을 통해 양반직을 명예직으로 파는 거임.
양반이 되면 좋은점? 군역에서 면제가 됨.
그래서 후기 가면 양반이 겁나 많아짐.
사실상 신분제 해체되는 중.
그래서 해체된거 보면 양반에서 권반(권력), 향반(지방으로 나간), 잔반(몰락한) 양반으로 나뉘고.
중인은 서얼과 기술직 중인들이 있는데
서얼들이 신분상승상소를 올려서 이게 먹힘.
규장각 검서관에 많이 등용됨 서얼이.
(ex. 박제가, 유득공)
그래서 기술직 중인도 소청하는데 안받아짐.
그래도 얘들은 돈 잘벌어서 상관없음(양반보다도 더 잘범)
그래서 양반따라하는 시사조직을 만들어 시짓고 글짓고 함.
이를 위항문학(양반 밑에 사람들이 문화 즐김)이라 함.
상민은 부농과 임노동자로 분화가 됨.
부농 특, 족보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함. 잔반들은 양반이지만 돈이없거든;
그래서 족보 매입하거나 위조도 함. 그리고 납속책같은 걸 통해 부농들이 양반이 됨.
천민은 노비가 많았는데, 얘들은 걍 도망가기 시작함.
그래서 걍 양인화도 생김.
노비종모법으로 원래 한쪽 천하면 천민인데 이젠 엄마 따라감.
그리고 심지어 정조의 아들 순조때 공노비해방을 함(사실상 정조가 다함)
그래서 양반에 권반은 뭐 권력있어서 상관없는데
지방에 온 향반(구향)과 부농들이 양반된 사람들이(신향).
만나기 시작. 그래서 향반들은 차별화를 보이기 시작함.
족보 외우고 사당 세우고 가부장적인 면모가 많이 보임.
신향은 지방관과 결탁해 향안이라는 양반 리스트를 불태움(신분세탁)
구향 vs 신향을 향전이라 부름.
민족 의식 성장함
예연사상과 평등의식이 성장하는데
평등의식을 보자면 서학에 천주교가 들어왔는데 이를 많이 박해함.
그중 유명했던게 순조때 신유박해.
(ex 이승훈 정약용 유배감(정조 죽으니 보호막 사라짐))
황사영백서사건도 있음 천주교 박해하는 조선을 벌하라고 서양에 알리는 거
그래서 반대하는 동학이 있는데
얘들의 주장은 인내천임(사람이 하늘이다)
얘도 뭐 사람은 평등하다는 서학과 같음.
서학엔 성경책이라면 동학엔 <동경대전>이 있음.동경대전>
=> 평등사회로 바뀌는 중
19세기 민란
19세기 초반에 유명한 거라 홍경래의 난
이 있는데,
우군칙 + 광산 노동자 + 농민들이 하나가 되어 일으킴.
정주성이라는 곳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이게 서북지역민을 차별하게 되니깐 난이 일어나게됨.
그래도 신분젠데 서북 지역 양반은 대접을 못받아서 생긴거임.
=> 선조가 진압함(다들 몰살)
19세기 중반에는 임술농민봉기
가 있음.
출발을 진주에서 하는데, 전국으로 확산됨.
탐관오리인 백낙신을 타도하고자 유계춘이 중심으로 일어남.
세도정치, 삼정문란 이런거로 백성들 빨리니깐 일어남 (철종때)
=> 대응책으로 안핵사를 파견(박규수
)
조세가 문제라고 삼정이정청을 만들고 암행어사 만들어 혼내주자 했는데,
이미 썩을대로 썩어서 잘 안됨.
망할 때가 된거임 사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