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때의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서 살펴보겠다.
대내정책
정치 : 세도정치(소수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
경제 : 삼정문란(전정,군정,환곡 삼정의 문란)
=>삼정이정청을 박규수
가 만들어 막으려 했지만 실패
흥선대원군의 목표는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임.
왕권강화
- 비변사 폐지 => 의정부(행정) + 삼군부(군사)
- 『대전회통』, 『육전조례』(법전)
- 경북궁 중건(임진왜란때 탔지만 다시 증건함,돈필요) <= 원납전(기부금), 당백전(돈을 찍어냄), 묘지림
- 서원 정리함(47개빼고 다없앰), 만동묘 폐지(명나라 황제모시는곳)
민생안정
- 전정 : 양전사업(토지 조사) -> 재정확보
- 군정 : 호포제 ->양반도 세금내야함
- 환곡(공무원) : 사창제(민간인으로 자율적으로 운영해라,공무원이 자꾸 삥뜯으니;)
=> 양반의 권리 다 뺏기고 있으니 최익현
이 총대메고 탄핵상소 올림
최익현은 나중에 나오는데 개항반대랑 을사의병에서 활동함.
결국 탄핵 상소 이후에 고종친정이 이뤄짐.
대외정책
흥선대원군은 통상수교에 대해서 거부정책을 펼치고 있었음
병인박해(66)
천주교 전파하는 프랑스 선교사 죽임
제너럴셔먼호사건(66)
평양에 미국 배가 들어옴.
민간에 들어와서 나쁜짓해서 제너렬셔먼호 불태움.
앞장 선 인물이 박규수
병인양요(66)
프랑스 선교사 죽여서 발생한 사건.
강화도에 프랑스가 보복하러 들어옴.
양헌수
가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활약해서 승리를 거둠.
강화도 건너편에 김포 문수산성에서 활약한 한성근
으로 프랑스 막아냄.
프랑스인들 여기서 그치지않고 외규장각 약탈함.(->박병선 선생님이 그래도 찾아옴, 임대지만..)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사건(68)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독일인들이 도굴함.(통상수교를 목적으로 시신탈취하려고)
신미양요(77)
제너럴셔먼호 승원들 다 죽었다는 소식으로
미국이 강화도에 쳐들어옴
어재연장군
이 광성보에서 전투함.
수자기(장수깃발)을 약탈해감
=> 서양들의 제국주의에 찌든 야만적인 모습때문에 더욱이 폐쇄함.
그래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외서 서양과 손잡는건 매국이라 규정함.
개항기 (개항 ~ 갑신정변)
제너럴셔먼호 사건도 있었지만 박규수 / 유홍기 + 오경석과 같은 인물은 통상 개화파였음. 그래도 서양의 문물 받아오고 통상해야한다는 마인드.
하지만 여기서 운요호 사건(75)이 벌어짐.
-> 일본이 서계(외교문서)에 일본을 천왕이라 부르라 하니 반발하니깐
용서 못한다고 한국 정벌하자는 정한론이 생김. 그래서 강화도에서 벌어진 사건.
=> 그래서 통상하자고 강화도 조약(76)을 맺음. 통상개화파도 개화하자하고 하니
(조일수호조규)
강화도조약
조선은 자주국이다 => 청과 종주권을 끊어려고
부산에 처음 개항함(원산 80, 인천 83)
불평등조약에는 해앙측량권(일본이 멋대로 측량함),
영사재판권(=치외법권,일본인은 일본인이 재판)
최초근대적조약임
부속조약에는 조일무역규칙과 조일수호조규부록이 있음
=>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을 하자 개화파와 반대한다는 위정척사파로 나뉨.
물론 주요 세력은 개화파임.
개화파도 2가지로 나뉘는데 천천히 가자는 온건파와 빨리빨리 급진파로 나뉨.
온건파(청이 모델)가 주장한게 동도서기임(동쪽의 도리는 그대로, 서양 기술만 받자)를
김홍집
이 주도해서 주장함.(김홍집 잘나옴)
급진파(일본이 모델)가 주장한개 문명개화임 대표적인물은 김옥균
.
이러한 개화 정책을 함께 이뤄나감.
이뤄나가는 그 주체가 통리기무아문
이라는 곳임.
여기서 기억할게 80년대의 개화의 아이콘은 통리기무아문
갑오개혁에 의해 90년대의 개화의 아이콘은 군국기무처
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함.
통리기무아문 - 12사
별기군
이라는 신식군대를 만듦(일본 장교가 지휘함)
구식군대인 5군영을 2영으로 축소함.(정리 해고)
사절단에는 영선사(청)
가 있음. 청에가서 무기를 배워옴 기기창
일본에도 파견됨. 수신사
대표인물 김홍집
.
『조선책략』이라는 굉장한 책자를 가져옴(글쓴이 황쭌셴)
내용으로는 러시아 막으려면 미국과 수교하라는데
미국은 이때 우리와 원수사이임.
=> 아까 그 개항반대파들이 들고 일어남. 영남만인소
사건
조사시찰단(일본) 파견됨. 분위기가 안좋다 보니 몰래 파견함.
임오군란(1882)
구식군인들이 많이 짤리기도 하고 차별이 있다보니 들고 일어남.
구식군인 +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잡아라~ 해서 피신함.
이걸 막기 위해 청을 끌어들여와서 진압함.(나라일을 외국세력들여 막음, 이거 위험함)
=> 청이 흥선대원군 납치하고, 내정간섭을 함.(고문파견)
묄렌도르프(독일인;청나라 고문)이 외교 재정을 간섭함.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함 => 내지무역이 가능하게 함.
우리나라가 별기군이 일본이 지휘하는데 불만인들이 일본 치니깐 일본이 제물포조약
을 체결함. 일본군대를 주둔하도록 함.
=> 우리나라에 청 군대, 일 군대가 들어옴.
또 제물포조약뿐 아니라 조일수호조규속약
도 체결함.
이것 또한 내지무역을 허락해줌.
=> 이렇게 청의 내정간섭이 심하다 보니 온건개화파랑 급진개화파가 확실히 나뉨.
그리고 젊은 청춘들인 급진개화파가 들고 일어난 사건이 갑신정변임.
갑신정변(1884)
특히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성광범, 서재필
이 100년전 신세대들임
이들이 중심으로 들고 일어남.
이게 외교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뮐렌도르프는 돈을 찍어내자하는데
경북궁 증건할때 당백전 찍어내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서
그냥 외국에 돈을 빌리고 갚자는 주장을 함.(급진개화파)
그래서 일본에 돈 빌리러갔다가 못빌림(급진개화파의 정치적 위상 떨어짐)
그런데 청나라 병력이 일부 철수 되자 내정간섭 벗어나려면 지금이다 싶어서
갑신정변이 일어남.
개화 문물이라 볼 수 있는 우정총국(우체국)이 오픈함.
아주 핫하다 보니 많은 대소신료들이 왔는데 불 난척 해서
다들 뛰쳐나올때 민씨 세력들 죽임.(갑신정변)
그리고 정변 일으킨 인물들이 창덕궁 가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확보함.
14개조 개혁안
을 선포함.
- 경제 : 재정을 일원화 해라.(호조; 의정부 6조체제에 재정담당)
지조법(토지 분배는 아니고)을 개혁하라 - 정치 : 신분제 폐지, 혜상공국 혁파(보부상), 규장각 폐지 => 특권들 다 없애고 평등으로 근대사회로 가자
but 3일 천하로 끝나버림, 청에게 지원 요청해서.(일본vs청)
그리고 갑신정변을 일본 힘 좀 빌려서 정변 일으키려 했지만
청의 진압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사건을 갑신정변
이라 부름.
=> 청의 내정 간섭 더욱 심해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양쪽 다 전쟁 안나게 텐진조약
을 체결함.
텐진조약
양쪽다 군대 철수, 다른 나라와 조약 할때 통보하는 걸로.
그리고 10년뒤 동학농민 운동이 벌어지고 이걸 진압하기위해
청이 들어오고 일본에 통보해서 청일 전쟁으로 이어짐.
또 갑신정변 실패하면서 일본 공사관 불탔으니 한성조약
을 체결함
한성조약
배상금 지불, 공사관 신축등이 들어가 있는 조약.